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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야기

십년을 경영하여...송순의 시조

10년을 경영하여 초려(草廬) 한 간 지어내니

반간(半間)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을 드릴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10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어
나한칸 달한칸 청풍한칸 내어두고
강산은 들일데 없으니 둘러보고 보리라



조선 명종 때의 시인 면앙정 송순(1493~1583)의 시조로 풍류를 잘 드러낸 대표적인 시조다.


초장에서는 가난한 삶인양 하더니 종장에 가서는 자연으로 인해 한 없이 풍요로워진 삶이다.

가난이 멋지게 풍류로 탈바꿈 했다. 굳이 초가 한 간에서 청빈이나 검소함의 이념을 찾을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달 · 바람 등의 인연을 사랑하고 ‘자연'속에서 평생을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선시와 사대부시가 ‘자연'을 통해 자기 본성을 찾고 일상의 이념을 얻으려는 노력을 거듭 강조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면앙정( 俛仰亭)의 시조는 선의(禪意)가 흘러 넘친다.

자연의 질서를 인간 내면에 규범화해 개체의 내적 질서를 확립하고 사회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선시의 실천 목표다.


송순의 시조는 전부 허구다. 1

10년에 걸쳐 초가 한 간을 지은 것도 아니고 또 그런 집에 산 것도 아니다.

조선시대의 이념에 맞는 풍류를 드러내고자 한 것일 뿐이다.


초가 한 간에 반간은 청풍, 반간은 명월을 드린다고 했으니 세간살이는 하나도 없다.

몸을 바로 누우면 청풍이 지나가고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밝은 달이 보인다니

그저 자연을 벗삼아 산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 허구는 진실을 담고 있다.

이 진실은 세계의 진실이 아니라 서정적 자아 자신의 진실이다.

선학적으로는 주관적 유심론에 의해 확립된 진여 법성의 ‘자아'다.


청풍도, 명월도 내집 안에 둔다.

강산도 내것인양 내집 뒤에 둘러두고 본다.

다시 말해 청풍도, 명월도, 강산도 다 나를 위해 있다.

곧 이들을 자아화한 것이다.


자기 감정의 순수한 기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 시는 흥취가 있다.

이런 흥취는 외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으로서 내적인 충만함에서 오는 그 순간의 기쁨이다.


사물 세계의 편에서 나를 바라다 보지 않고 자아의 편에서 세상을 조망한 것이다.

자아와 세계는 상대적 크기를 갖는다.

세계가 커지면 자아는 작아지고 반대로 자아가 커지면 세계는 작아진다.

자아가 커지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자신감이 많아지면서 여유가 생긴다.


자아가 지나치게 크면 과대망상증이 될 염려도 있긴 하지만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세계를 자기화 하는 자아의 능력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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