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뉴스와 상식

불교에 성직자는 없다

 호법부 공문서 “스님을 성직자로 표현”

절집선 금할 말을 ‘護法’부장이 써서야 


[이학종 칼럼] 스님은 사제가 아니라 수행자다

왜 스스로를 반인반신의 어정쩡한 위치로 만드나

 

 

부처님은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고통발생의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 사람이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가르치셨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고타미라는 과부가 외아들을 잃고는 슬픔에 빠져 온갖 현자


들을 찾아다니며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삼대 동안 상여가 나가지 않은 집


에서 겨자씨를 얻어오면 아들을 살려주겠다’고 말했다. 3대 동안 상여가 나가지 않은 집


을 찾아 백방으로 다니던 고타미는 자연스럽게 누구나 태어나면 죽으며, 한 번 죽으면 다


시 살아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다시 부처님을 찾아왔을 때는 슬픔도 고통도 어느덧 사라지고 차츰 정상을 되찾고 


있었다.

 

이처럼 고통의 발생 원인을 깨달아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이 제시


한 불교의 길이다. 만일 절대신을 믿는 종교였다면, 그들은 고타미 여인에게 ‘전지전능


한 능력을 갖춘 신에게 기도하여 구원을 얻으라’고 권하며 그들의 신이 보여준 수없이 


많은 기적사례들을 일러주었을 것이다.

 

절대신을 믿는 종교의 교화방법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길은 그들의 길일 뿐, 불교의 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불교는 합리적이며 냉철한 지혜(깨달음)와 이것에 바탕한 바른 삶(팔정도)으로 고통과 어


려움에서 벗어나 최상의 즐거움을 얻으라는 가르침이다.

 

적어도 스스로 불교를 믿는다고 생각한다면 마땅히 부처님께서 가르쳐 준 길을 걸어야 한


다.

말로는 불교를 믿는다면서 행동은 신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절집에서도 신을 믿는 종교에서나 사용되는 용어, 즉 성직자(聖職者)란 말이 아무

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그리 흔치 않았던 현상이다. 성직자란 무엇인가.

 

신을 믿는 종교에서 신의 이름으로 일반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특별한 지위의 사람


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성직자는 가톨릭의 사제이거나 개신교의 목사이거나, 무당의 경우에 해당된다.

인간이면서 신의 일을 대리하지만, 그렇다고 신은 아닌 존재가 사제, 즉 성직자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사제나 성직자는 모두 유신종교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재론이 필요 없겠지만 불교는 근본적으로 종교적 성격이 유신종교들과는 다르다.

 

부처님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초월적 신이 아니다.

부처님은 최고의 진리를 깨달아 해탈에 도달한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따라서 스님은 사제가 아니라 수행자이고 스승이어야 한다.

부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하고, 동시에 미혹한 중생들을 부처님이 제시한 바른 삶


의 길로 이끌어주는 도사(導師)여야 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불교에 성직은 없다


.

 

그런데도 시나브로 스님들이 사제의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방편이라는 구실로 유신교의 사제와 같은 역할을 전업으로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의지하기 좋아하는 나약한 중생들이 스님들에게 사제의 역할을 하도록 바라는 


경향이 짙어졌다.

얼핏 겉모습만으로는 오늘날 한국불교는 유신종교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 사건은 국민의 신변을 보호하고 질서를 수호해야 할 경찰 공무원이 공직자로서 본연


의 자세를 망각한 채 성직자 신분을 인지하고도 만취 상태에서 폭언과 폭행을 자행하였다


는 사실에 공분을 금할 수 없다.

따라서, 본 종단은 다음의 사항을 엄중히 요청하오니 조속히 처리 후 회신하여 주시기 바


란다.”

 

만취한 경찰의 김포 용화사 주지 지관 스님(경기불교환경연대) 폭행사건(1월 19일 자정경


)과 관련 지난 1월 26일 조계종 총무원이 호법부장 명의로 경찰에 전달한 항의 공문 내용 


중 일부다.

 

한 달 전 이 공문의 전문을 보고 당시 기자는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조계종 총무원에서, 그것도 부처님의 정법을 지킨다는 호법부서의 장 명의로 낸 공문에 


‘성직자’란 용어가 수행자를 대체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문제를 제기할 경우 경찰의 공개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


에서 불요불급한 시시비비를 가리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싶어 문제가 해결된 후 거론하


기로 미뤄놨었다.

 

이제 경찰청장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도 했고, 총무원장이 찾아온 경찰청장에게 폭행당


사자의 선처까지 요청한 마당이니, 이 문제를 재론해도 좋을 듯싶다.

 

거듭 강조하지만 성직자란 말은 절집에서는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조계종 총무원


에서, 그것도 호법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말이다.

 

성직자보다, 수행자라는 말의 격이 떨어지는가. 세상에 수행자라는 말보다 더 숭고하고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

진실로 수행을 열심히 하는 스님이 스스로를 수행자로 지칭하는 것, 또 여러 사정으로 수


행에 조금 소홀하더라도 언제나 자신이 수행자임을 잊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수행자로 표


현하는 것, 이 모두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앞으로는 제발 스님들이 스스로를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어정쩡한 위치로 끌어내리지 않


으시기를 바란다.

스님들이 수행자의 삶 보다 사제노릇 하는 데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면, 이는 곧 정법의 


손상을 부르고 불교의 쇠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붓다--               이학종 


(urubella@naver.com) 기자   

   

호법부장 (2010-02-23 20:33:03)                

호법부장 덕문입니다. 모든게 저의 부덕하고 무지에 의하여 이런 문제가 발생한것 같습니


다. 공문을 발송함에 있어 좀더 세밀히 살펴서 승가 위의가 손상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바로 전화라도 하셔서 지적해 주셨으면 바로 시정하고 사과 올렸을 텐데 이


리 지면을 할애까지 하여 경책하여 주시니.... 언제든지 잘못된 부분이나 경책할 내용이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요. 늘 호법부는 열려져 있으며 전화기는 늘 그번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