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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야기

[펌]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그늘 ‘무보험 4700만명’ 빈자엔 ‘의료지옥’

ㆍ장기치료로 파산 속출… 의보 위해 결혼도

ㆍ시장 논리에 휘둘려 제약업계는 날로 번창

 

"미국의 한 시골 마을이 떠들썩해졌다. 무료 의료봉사대가 왔기 때문이다.

한 시간여를 달려온 40대 주부는 몇 개 남지 않은 아랫니들을 모두 뽑아달라고 통사정했다.

봉사대가 떠나고 난 뒤 혹 치아가 다시 썩으면 치료를 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제3세계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지난달 말 미국에서도 잘 사는 주로 꼽히는 버지니아주 남부 와이즈에서 2박3일간 있었던 비영리단체 '벽지의료봉사(RAM)'의 무료 진료 활동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뉴스위크가 전한 사연이다.

 

지난 2월 뉴올리언스 마르디 그라(사육제)에서 만난 브래디와 허긴스는 두 달 만에 결혼을 결정했다.

주변에선 "상대를 알기엔 너무 이르지 않느냐"고 걱정했지만 신부전 환자인 브래디는 3년 전부터 받아온 투석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메디케어(65세 이하 저소득층·장애인을 위한 연방 의보)는 투석치료를 3년만 허용하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의료보험이 있는 허긴스(38·배관공)를 배우자로 선택한 이유라고 뉴욕타임스는 13일 전했다.

 

셰리 패리시(47·간호사)가 유방암 초기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해 4월. 공교롭게 20년간 살아온 남편과 법정 이혼절차가 끝나기 2주 전이었다.

결국 암치료가 가능한 보험이 있는 남편과의 이혼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의료 제도 후진국'인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이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봄 미 카이저 패밀리 재단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는 식구들 중 한 명이 지난해 의료보험을 위해 결혼했다고 답했다.

 

일부에서는 의료보험 민영화를 선진화인양 강조하고 있지만, 공보험과 사보험이 혼합된 미 의료보험제도의 실태는 선진과는 거리가 멀다.

세계 최고의 부국이자 가장 높은 의료기술을 자랑하면서도 의료서비스 현실은 참담하다. 시장 논리에 의료서비스를 맡긴 탓이다.

 

4700만명에 달하는 무보험자는 물론 보험 가입자들도 빈약한 보장범위로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큰 수술을 받거나 장기치료를 받고 나면 파산하는 개인이 허다하다. 불법이민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퓨 히스패닉 센터는 미국 내 히스패닉 주민의 25%는 정기적인 의료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3일 전했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의료비를 적게 지불하는 건 아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6%가 의료비로 쓰였다.

금액으로는 2조2600달러,1인당 지출액은 7349달러(약 734만원)이다. 선진 7개국 평균의 곱절에 가까운 92.7%를 더 지출하고 있다.

의료비 1달러당 45센트가 연방및 주정부 예산에서 나올 정도로 국민의 혈세도 적지 않게 쓰고 있다.

 

현재의 의료비 인상 추세로 보면 2017년에는 의료비 지출이 GDP의19.5%가 될 것이라는 게 메디케어·메디케이드(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연방·주정부 의보) 센터(CMMS)의 예상이다. 고비용·저효율의 금메달감이다.

 

미국민들이 의료 서비스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것과 달리 의료보험과 제약업계는 번창하고 있다.

이날 시민단체 '지금, 미국을 위한 의료보험을(Health Care for America, Now·HCFAN)'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의 몰락으로 지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시간주의 3대 보험업체의 경우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순익이 12.3% 불었다. 같은 기간 비슷한 수준인 12.2%의 보험가입자가 줄어들었지만 이들 업체의 올해 순익은 모두 28억6000만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