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곳곳에는 산수유 명소가 많다. 특히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일원, 경상북도 의성군은 봄마다 나들이객들을 손짓해 부른다.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을 이고 진 산수유나무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는 풍경 아래 서면, 노란 지우개들이 온갖 근심까지 지워주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그중에도 내가 꼽는 최고의 산수유 명소는 경북 봉화의 띠띠미마을이다. 전국의 산수유 마을을 대부분 가봤지만, 띠띠미마을의 산수유처럼 사람 사는 마을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풍경은 흔하지 않았다.
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두동마을. 띠띠미마을의 공식 주소와 이름이다. 하지만 띠띠미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어원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뒷마을이라는 뜻의 ‘뒷듬’이 ‘뒤뜨미’로 바뀌었다가 세월 따라 ‘띠띠미’로 굳어졌다는 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띠띠미마을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근까지만 가면 산수유가 알아서 길을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마을 인근은 가로수까지 산수유다. 그러니 고민할 것 없이 노란 꽃만 따라가면 된다. 마을은 세상의 모든 길이 끝나는 곳에 있다. 봉화의 진산이라는 문수산 자락 중에서도 마지막 골짜기다.
띠띠미마을은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로도 알려졌다. 노인이 젊은 소를 길들이는 장면을 이 마을에서 촬영했다. 또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어서 지금도 고풍스러운 집들이 여러 채 남아있다. 마을이 처음 생긴 것은 400여 년 전이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던 삼전도의 치욕을 참지 못한 두곡(杜谷) 홍우정(洪宇定) 선생이 은둔을 위해 골짜기로 들어오면서 마을이 생겼다. 그때는 다래 덤불로 뒤덮인 곳이었다고 한다. 두곡 선생이 정착하면서 처음 심은 게 바로 산수유였다.
그는 자손들에게 “산수유만 잘 가꾸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니 공연한 세상일에 욕심을 두지 말고 휘둘리지 말라”고 일렀다고 한다. 그 뒤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두곡 선생이 심은 산수유나무 두 그루가 지금도 마을을 흐르는 개울 옆에 살아 있다.
그렇게 산수유 마을이 된 띠띠미에는 5000그루 이상의 산수유나무가 있다. 그중 상당수는 100년 이상 묵은 것들이다. 세월만큼 꽃무리도 탐스럽다. 언덕 위에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보면 꽃이 아니라 구름을 보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노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누군가 마을을 통째로 노란 물감에 넣었다 꺼내놓은 것 같기도 하다. 자세히 보면 노란색이라도 같은 노란색이 아니다. 개나리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우쭐대는 원색이라면 산수유는 흐린 듯 아련하게 풍경을 적신다. 밭둑도 개울도 고택의 담장도 무너져가는 폐가도 꽃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다. 그들이 서로 어울려 봄을 완성한다.
밭두렁을 따라 걷다가 과수원으로 접어들면 봄기운은 더욱 완연해진다. 곳곳에 달래?냉이 등 봄나물이 아우성처럼 솟아오른다. 저기 어디쯤에는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가 있을 법도 하련만 동네는 비어있는 듯 조용하다. 꽃비 속으로 지친 육신을 허무는 빈집도 눈에 띈다. 이곳 역시 젊은이들은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게 틀림없다. 마을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도 눈 마주칠 사람 하나 없다.
마음을 통째로 빼앗아 간 띠띠미마을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마음을 두고 가거나 눌러살 수도 없으니 갖고 온 시간을 모두 쓰고 가는 수밖에. 마을 안쪽 개울가에 앉아 몸과 마음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콧노래를 불러보는 것은 봄 속으로 떠난 여행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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