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경북 등산

여근곡의 전설 경주의 오봉산

늘은 건천의 오봉산엘 올라보기로 했다.
서너번의 등반약속이 있었지만 매번 이런 저런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산이기도 했다.

10시쯤 가볍게 산행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건천사거리를 지나 영천쪽으로 조금 더 달리니 왼편의 산이 오봉산일것 이란 생각은 들었으나 산행지까지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근처의 주유소엘 들러 길을 물으니 직원인듯한 젊은이가 친절히 가르쳐준다.
그가 가르쳐준데로 조금더 달리니 왼편 철도건널목앞에 신평2리란 표지판이 보이고 그밑에 조그맣게 오봉산 무슨사란 절 표지판이 보였

다.  

철도 건널목을 지나고 시멘트포장 농로를 꼬불꼬불 한참을 지나 경부고속도로 밑을 통과한다.
산행 들머리도 모르는 입장이고 내 습관대로 일단 가보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꼬부랑 농로를 따라 산앞으로 조금더 다가가기로 했다.

산앞에 거의 다다를 즈음 옛설화에 나오는 옥문지이일까? 조그만 저수지가 있었다.
설화도 설화인지라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길은 바로 산쪽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길이 끝이없이 산으로 올라간다.
이곳 지방이 항상 그렇듯이 산불방지용 임도일것으로 추측된다.
주변을 둘러 보았으나 산행 들머리 같은곳은 없었다.
(내가 찾지 못했다 산행인들이 많지 않은곳이기에 길찾기가 수월치 않았다)

일단은 길을따라 조금 더 올라보기로했다.

어데나 그렇듯이 산불을 예방도 좋지만은 산마다 임도가 설치되어 있는것은 산을 다 잡아먹는것 같아 산을 오를때마다 항상 안타까운 마

음이 들곤했다.

 

"혹시" 이거 차로 정상까지 가는거 아녀?

불연듯 불길한(?)예감이들었다.
거의 산등성이까지 올랐을 무렵 등산객을 태우고 왔음직한 승용차 한대가 외롭게 서있다.

길은 더 이어져 어데로 가는지 모르지만 일단 먼저와 서있는 차옆에 차를 함께 세우기로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차를 세우고 산쪽을 바라보니 등산로가 제법 잘나있었다.

능선이 너무 가파른 나머지 길은 지그재그로 산등성이를 오른다. 흡사 한계령처럼....(너무 과한 표현이지만 오솔길이 꼭 그렇게 생겼다)

꽤나 오랜된 등산로인듯 걸음 걸음으로 길이 파이고 그 위에 낙엽이 수북히 쌓였다.
제법 걸을만 하다 운치도 있었다.

조금을 걸었는데도도 등에 땀이난다.

제법 걸을만 하다라고 생각할즈음 등산로는 거기서 끝났다. 또 시멘트 포장길이 나타난다.
달리 생각지 않아도 차로 올랐던 그 포장길이였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산을올라 차도를 걷는것보다 한심한일은 없다.

 

문득 우측편을 바라보니 제법 멋들어진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길도 없고 너무 가파르지만 올라보기로 작정했다 나무가지를 잡고 올라붙었다.
바위는 제법 멋들어졌다 이곳에서 한숨을 돌리기로했다 오이도깍고 오랜지도 한개 벳겼다.
다시 출발하려고 옆을보니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이 제법 잘나 있었다.
괜한 무리를...그래도 후회는 없다

 

길을따라 조금 걸으니 또 콘크리트 포장길과 만난다 예견된일이다.

저멀리 산불감시용 초소가보인다 정상인듯했다.

 

어쩌면 이렇게 가끔씩 있을만한 샛등산로 한줄없이 포장길일까?

그러나 역시 이름이 붙을만한 산임에는 틀림 없었다.


어느 봉우리건 봉우리 봉우리는 여지없이 암봉이 뽐내고 있다.
불만은 가슴을 쳤지만 어떻게하랴 달리 길을 내며 나갈수도 없는것을... 어느덧 정상에 섯다. 오봉산 정상688미터...경주 일요산회가 세운

표지석이 서있었다.

 

산을 오르는 맛은 없었지만 조망만은 너무 멋지고 아름다웠다. 저멀리 가물거리며 고속도로의 차량행렬이 보이고 그너머로 아마 대구일

것 같은 도심도 가물가물 보였다.

 

산정상 아늑한 바위밑에 아담한 암자가 있다 주사암... 이 암자 때문에 길은 산정상까지 아주 자알 포장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암자가 그래도 1천3백여년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유서 깊은 사찰이였다.

 

주사암을 둘러보고 다시 정상 옆길로 따라 조금더 걸었다.


정산을 휘돌아서서 나타나는 너른 운동장(?)마당바위는 삼면이 깍아지른 절벽이였다.
수십명은 충분히 쉴수있을듯한 이 바위앞에서서 밑을 내려다보니 그래도 오금이 저렸다. 

 

그너머 저 아래로 산내면을 지나 청도로 향하는 길목도 가물 가물 보인다.

 

처음 들머리를 빼고는 거의 포장길을따라 오르긴 했지만 정상의 조망만은 너무 멋진 광경이였다.
조망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마당바위에 베낭을 풀었다. 끓여서 먹으리라고 준비한 라면을 끓이기 위해.....

 

--오봉산 여근곡유래--

오봉산은 부산성(富山城)내에 속한 산봉에 불과하지만 산 동쪽 아래의 여근곡(女根谷)이 더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오봉산을 올려다 볼 때 가운데 부분으로 도톰하고 그 아래로 오목한 부분이 마치 여성의 국부를 닮은 형상이라 하여 이 골짝부분을 여근

곡이라 부르고 있다

옥문지(玉門池)는 여근곡의 중앙부로 사서에 나오는 신비의 자그마한 연못이름이고 사시사철 질퍽한 물이 가뭄없이 쏟아져 나왔던 곳이

라 한다.

이 옥문지를 작대기로 쑤시고 휘저어 놓으면 아랫동네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는속설로 동네 어른들이 철저히 지켜왔다고 하며 처녀들의

바람기를 춧석이느라고타동네 총각들이 몰래 이 골짜기로 들어와 작대기로 휘젓기가 예사였다고 한다.

 

이곳 여근곡은 신라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機三事) 설화와 관련된 곳으로 유명하다.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에 보이는 이 설화를 살펴보면 신라 왕궁 안 옥문지에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개구리들이 모여 3,4일 동안 울었다. 이를 이상히 여겨 여왕에게 묻자 여왕은 급히 각간 알탄, 필탄에게 명하길 정병 2천명을 데리고 속히 서쪽 여근곡이란 곳에 들어가 적병을 습격토록 하였다. 이에 군사를 몰고 서쪽으로 가 물으니 과연 부산(富山) 아래 여근곡이 있었고 백제군사 5백여명이 그곳에 숨어 있었다. 신라군은 곧 그들을 사살했다고 한다. 선덕여와의 뛰어난 혜안을 신기하게 여긴 군신들이 어떻게 개구리를 통해 백제군이 숨어 있는 줄 알았냐고 묻자 여왕은 개구리는 성내는 형상이니 군사의 상징이고, 옥문이란 여근이요, 여자는 음인데 그 색은 희고 흰 것은 서쪽이다. 그러므로 서쪽에 군사가 있음이며 또한 남근은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으므로 쉽게 잡을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 따라서 여근곡은 단순히 형세가 여성의 음부를 나타내는 것 외에도 피비린내 나는 신라, 백제의 군사적 충돌이 있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 경북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제산 팔각정이 궁금해  (0) 2007.12.30
정상이 명당이라는 형(兄)산  (0) 2007.12.14
팔공산 이야기  (0) 2007.12.03
남산 그리고 쏱아지는 빗줄기  (0) 2007.12.03
추석 그리고 운주산  (0) 2007.09.25